”오른쪽 난소에 2.8cm정도 되는 혹이 있네요“ 처음 이 얘기를 들은게 4년전쯤 되었을 거다.
동네 산부인과에서도 크기가 작아서 아직 문제가 없으니, 정기적으로 크기나 모양의 변화를 보는거 외에는
따로 다른 처치를 하지 않았다. 혹시나 암일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어서 ROMA검사도 했으나 암세포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그 뒤로는 매년 회사 건강검진 받을 때 부인과 검사를 좀 더 추가해서 받으며 추적을 했다.

나는 난소 혹이라는 것을, 그저 자궁에 생기는 물혹 정도로 누구에게나 생기는 혹이고, 쉽게 제거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 때.. 경화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자궁쪽은 아니지만 한방 약물로 혈액순환이라도 시켜볼 수 있었다면.
수술 전에 한 번 시도라도 해보았다면. 크기가 줄었을까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해본다. 그 때는 나도 무서웠고, 어렸고, 잘 몰랐다.
28살때 부터 생리양이 좀 많이 줄었는데? 하고 체감했다. 7일 꽉 채우던 생리를 3-4일 만에 끝내더니,
30대가 되어선 2-3일로 줄기도 했다. 그러나 주기는 규칙적이어서 문제는 없다고 하니 혹이 있어도 괜찮겠지 라고 여겼다.  

어찌 되었든 난소안의 혹은 매년 1cm씩 자랐다.
겉보기만으로도 약 5.5cm가 되었을 때가 2023년 10월 건강검진이었다.

2024년 1월, 연초부터 산부인과 자주다니는 내 동생이 동네 산부인과 보다 더 큰 규모의,
복강경 전문 선생님이 계신 산부인과에 나를 끌고가 더 자세한 상담을 받았다.

내 동생 주치의인 여자 선생님은 임신, 출산, 산모들의 건강 관련된 여성 질환을 보시는 선생님이셨는데
이 선생님은 질초음파로 난소를 보셨으나 일반적인 혹인거 같고 자궁에도 물혹이 있는거 같다고 하셨다.
수술에 대해선 큰 의견은 없으셨고 난소 종양을 더 잘 봐주실 복강경 전문 남자 원장님께 나를 올려보냈다.

초음파 찍은 영상을 쭉 돌려보시더니, 모양이 좋지 않은거 같은데
불편하겠지만 한 번 더 질초음파를 직접 보셔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더 세밀하게 천천히 영상을 촬영하시고, 부분 부분을 더 자세히 찍으신 다음 나에게 이렇게 설명 해주셨다.
난소 종양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인 물혹이 아니라 경계성 낭종, 유사암 인것 같으니
대학 병원에서 MRI를 찍어보고 수술 방향을 결정해야할 것 같다고 말이다..
일단 나랑 동생은 너무 깜짝 놀랐다. 단순하게 난소에 있는 혹만 떼면 될 줄 알았는데,
이럴 경우 난소 전체를 들어내야할 수 도 있고, 워낙 재발율이 높은 편이라 그렇게 하는게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소견이었다.
대학 병원에서도 만약 소견이 일치할 경우, 아마 거기서 적출 수술을 하자고 할거라고 말씀하셨다.

근거 1) 모양이 동글동글 고르지 않으며,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구간이 많았고, 혹이 난소 벽에 들러 붙은 면적이 넓었다.

근거 2) 난소 혹에서 맥박이 느껴진다. 초음파의 높낮이 변화를 보면서 나도 직접 왼쪽과 오른쪽의 다른 소리를 비교해서 들었는데,
혹이 혈관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럴 경우는 높은 확률로 경계성 종양인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근거 3) 암이 아니라 경계성 종양일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암세포였다면 이렇게 규칙적으로 1cm씩 자라지 않고
3-4년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을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오래 전에 받았던 roma 검사도 암세포가 아닌, 약간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은 확률, 그렇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난소암의 가능성…이라는 말 자체로 너무 무서운 이야기였다.
나는 소견서를 받고 아주대 병원 부인암센터에서 mri 와 혈액검사 등을 받았다.
첫 진료때는 박원장님이 꼼꼼하게 찍어주신 초음파 영상물과 소견서를 토대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뒤로는 mri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mri 조영시 약물 부작용과 관련된 각종 혈액검사 등을 받고 왔다.

2월 8일 검사 결과가 나왔다. MRI 소견 역시 경계성 종양 이었다.
초음파로 봤을 때보다 크기가 몇 mm 더 컸고, 암에 대한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혹만 깨끗하게 떼어 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난소 적출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또 듣게 되었다.

수술은 바로 다음 달인 3월 4일로 결정 되었다.
전공의 파업 이야기가 나오던 시점이라 수술이 잡히고, 또 미뤄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로봇수술 권유를 처음부터 엄청 하셨다. 천만원이라는 수술비가 매우 부담되어서 처음에는 일반 복강경 (3-400만원)을 고민했는데
주변 장기 까지 꼼꼼하게 보는 것이 좋을거 같다는 선생님 말씀과, 로봇 수술이 후유증이 덜하고 흉도 덜 진다는 말씀,
그리고 로봇수술은 별도의 병실과 수술실이 있어서 더 빨리 일정을 잡을수 있다는 말에 로봇수술을 결정했다.
어차피 일반 복강경(보통 1개에서 4개까지 구멍을 뚫는다)을 하더라도 포트를 많이 뚫게 될 때 들어갈 후관리 비용과 나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암세포일 가능성 등을 생각했을 때… 로봇이 깔끔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소변줄을 달고 싶지도 않았다.. 케바케지만..

최대한 배꼽에 단일공(1포트)으로 구멍을 하나만 뚫어서 실시 하되,
일단 수술 중에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실행한 뒤, 주변 장기를 더 보게 될 경우 포트를 더 뚫을 수 있다고 하셨다.

난소 적출을 하자고 하셨을 때 바로 눈물이 터졌다.  사실 그 병원 대기실엔 정말 나보다 더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 수두룩했을 것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와 버렸다.
난소라는게 .. 일단 호르몬 기관이며, 난자를 배출하는 곳이고, 난자 한 쪽을 잃는 다는 것은 그만큼의 임신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여겨졌고,
그 만큼 폐경도 빨리오고, 노화도 빠르게 올것 아닌가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안 들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산부인과 의사 분들 모두 건강한 한 쪽 난소만으로 임신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명확한 답변을 받았고,
조기 폐경에 대해서도 기껏해야 남들보다 1-2년 수준이라고 하시며 요즘은 50대 까지도 생리를 하기 때문에 너무 큰 걱정 말라 하셔서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수술 후인 지금도 여전히 난소 적출에 대해서는 허전한 마음 뿐이다….. 뭔가가 텅비어 있는게 느껴진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남자로 치면 마치 한쪽 고환이 없는 사람 같잖아…..ㅜ (수술 후에 이런 유머 쳤다가 선생님한테 혼남)

수술 날짜가 잡힌 후부터 나는 수술 전에 꼭 준비하거나 해야할 것들을 정리했다.
테니스도 미친듯이 몰아서 쳤고, 미리미리 중요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수술전에 감기나 질병에 걸리면 안되기 때문에 마스크도 꼭 하고 다녔다. 손씻기도 매우 중요.

복강경 수술을 앞뒀다면 반드시 추천하는 것. 수술비와 보험.

1. 목욕탕/사우나 가기. 수술 후에는 한동안 사우나나 반신욕이 금지되기 때문에.. 꼭 꼭.. 지금 너무 그리운 것이 사우나이다ㅠ
그리고 수술실에서 발가벗겨지기 때문에, 창피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평소에 떼를 잘 벗겨내고 가는 것이 좋다.
배꼽도 잘 닦고, 등도 밀고, 제모도 좀 하고.
나도 수술 바로 전날 말고 한 2-3일 전에 아주 푹 담그고 왔다.
수술하고 한동안 못씻어서 살도 건조하고, 건조하면 흉도 잘 지니..몸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는게 좋은거 같다.

2. 일정에 맞게 나와 함께 해줄 간병인 찾기. 보호자가 필수.
나의 경우 3박 4일 입원을 했고, 수술 당일에는 보호자가 무조건 같이 있어야 한다.
혼자 일어나기도, 걷기도 힘들고, 소변도 받아야하는데 챙길게 많다… 나는 엄마가 3일 내내 함께해줘서 너무 든든했다.
병원 밥이 너무 맛없어서 엄마가 지하 푸트코트에서 김밥사다주고 ㅜㅜ
연차는 월화수목 4일 썼고, 금요일은 재택근무 했다.
나는 거의 풀 재택이 가능한 외국계 회사에 근무중이라 요즘도 내내 재택근무로 병원 일정을 조정해서 다니고 있다.
이직하려 했는데… 올해는 텄다. 재택근무 가능한 회사는..최고다.. 땡큐….충성

3. 집 청소. 냉장고 비우고 정리. 쓰레기 미리 미리 다 버리기. 빨래도 다 해버리기.
움직이기 편안한 침대 구조 만들어 놓기. 얇은 이불 필수. (배를 너무 두껍고 따뜻한걸로 덮으면 열이 난다..)
나는 집에 코코넛 워터 한 박스를 미리 주문해놨다. 호박즙 같은걸 드시는 분도 계시다. 노폐물 배출을 잘 해준다고 해서.
첨가물 없는 킹아일랜드 코코넛 100% 추천.

4. 개인적으로 봄에 수술하니 좋다고 느꼈다. 봄 완전 추천.  
여름이었으면 몸도 더운데 열도 나고 왔다갔다 힘들었을거 같기도 하다. 그러나 차라리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 싶은게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어서 몸을 시원하게라도 하지.. 겨울엔 배에 열 꺼줘야하는데 두꺼운옷과 히터를 안틀고 살수는 없으니까ㅠ

5. 수술비를 미리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카드 한도를 2000만원까지 늘려놓거나, 병원 혜택이 있는 여벌의 카드를 준비한다.

6. 미리 보험 항목들을 체크하면 좋다. 실비는 기본이고, 유사암 진단금 항목이 있는지 꼭 확인.
경계성 종양은 난소암 0기라서, 유사암으로 분류 된다.
나는 내 보험에 유사암 진단 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 있었다. 무려 1000만원!
수술비만 총 1100만원 나왔는데, 거의 다 돌려받은 셈이다. 거기다 실비는 따로 청구되어 850만원 가량이 추가로 나왔다.

바로 보험사에서 확인전화가 오는데, 0기암 진단이면 3000만원 준단다.
그러니 병원에가서 유사암 말고 0기암으로 서류를 수정해달라고 할 수 있는지 살살 꼬신다.
나는 아직 젊은 편이고, 암도 아니고 유사암인데. 지금 암 진단금을 받아버리면
나중에 내가 진짜 큰 암에 걸렸을 때, 진단금을 받을 수 없고 그대로 끝나는거다. 진단금은 1회성으로 휘발된다.
그리고 암 보험료로 확 오를 것이고, 앞으로 암 관련 보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없게되겠지!
이사람들이 나를 호구로 아나. 내동생이 보험사 다니는데 뭔 사기를 칠라구.
더 큰 암에 걸리면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해지는데, 그 때가서 혜택을 다 못받을 수 있다. 호구 잡히지 말길.
일단 서류 수정은 의사가 해주지 않을 거고, 말도 안되는거다.

보험 가입이 되어있다면 수술비에 대해서 너무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부담 갖지 말자..
그리고 보험사 놈들..말은 주의 해서 듣고..

그리고 수술이 끝나니, 난소 관련 희귀 질환으로 판정되어 국민 건강보험공단에서
산정특례 등록이 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암, 희귀, 중증 난치 질환 등은 적용기간이 무려 5년이다.
본인 부담률이 5-10%로 줄기 때문에 이후 받는 산부인과 진료에서 5천원 이하의 금액을 내고 진료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말 의료 혜택이 엄청 나구나 몸소 겪고 나니, 요즘 한국 사회가 참 달라보인다.

4월 28일, 수술 후 벌써 두달차인데.. 내 배꼽은 아직 아물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외래를 다니고 있다…

이런 큰 수술이 처음이라.. 수술 후 처치가 더 더더더더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다음 장에 수술 당일과 후기를 더 이어서 쓰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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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urs sincer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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